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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삼국지 중국문명기행
全 중국 대륙에서 찾은 삼국지 유적, 그 흔적을 따라 5천km의 대장정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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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혼, 중국
全 중국 대륙에서 찾은 삼국지 유적, 그 흔적을 따라 5천km의 대장정을 떠나다

中國 최고의 역사서이자 全 세계 베스트셀러, 삼국지!
위(魏), 오(吳), 촉(蜀) 세 나라는 오늘날로 비유하면 무수한 고비를 넘기고 성공한 다국적 기업이다. 조조나 유비는 나라가 망하느냐 흥하느냐가 걸린 건곤일척의 싸움을 무수히 치렀고, 전장에서 몇 번이나 죽을 뻔 했다.힘과 지모로 싸우기도 했고, 덕과 인심으로 싸우기도 했다. 적과 동지가 따로 없다.
그때그때 이해관계에 따라 싸우기도 하고 연합하기도 한다. 언제 싸우고 언제 연합하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승자가 되는 비결이다. 그러기 위해선 상황 판단과 이해득실에 밝고 냉철해야 한다.

삼국지의 인물을 통해서 보는 21세기형 성공 비결
성공의 비결이란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서건 자신이 가진 문제점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삼국지>에 바로 그 답이 있다.
본 다큐멘터리는 중국 역사 전문가 김영수가 직접 소설<삼국지>의 무대인 중국을 찾아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의 진실과 허구를 비교하는 재미를 담고, 조조, 유비, 제갈량, 손권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현대인들에게 삼국지가 제시하는 처세와 지략은 과연 무엇인지 살펴본다.

1부 난세(亂世)가 택한 영웅, 조조(曹操)


<寧敎我負天下人, 敎天下人我負> 내가 세상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두진 않을 것이다!
<삼국지>속에서는 패자, 현대에는 초일류리더로 평가 받는 조조

‘촉한정통론’에 밀려 <삼국지>속에서는 ‘난세의 간웅’으로 일컬어진 조조…
<삼국지>의 인물들 중 현재까지도 기념관 하나 없는 소홀한 유적지 관리 등으로 가장 푸대접을 받고 있으나, 환관의 양자라는 출신 성분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2세기 말의 대 혼란기 속에서 중국 전역을 통일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또는 문화적으로 가장 선진지역이었던 북 중국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삼국지>의 인물 중 가장 많은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인물이다.

조조가 난세에 웃은 이유는..

타고난 자질과 부단한 담금질로 최강국을 건설했으며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전략가로서 능력을 우선하는 청탁불문의 인재 등용을 실현했고, 둔전제로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 말년에도 후계구도를 완성해서 자신의 사후에도 풍부한 인재와 좋은 시스템을 위대한 유산으로 남긴 조조~ 조조가 난세에 폄하 받으면서도 웃었던 이유는, 훗날 위대한 CEO이자 뛰어난 정치 감각을 지닌 초일류 리더로 재평가 받을 것을 미리 예견한 것은 아닐까? (54분)


2부 유비, 마음(德)으로 천하를 얻다

<兄弟如手足> 형제는 수족과 같다

충심을 부르는 인정의 리더십!

유비는 원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출발했다. 그럼에도 조조와 자웅을 겨루는 위치까지 오르게 된 비결은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재를 아울러 적소에 배치할 줄 아는 덕인(德人)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만든 데 있다. 이는 스스로 한실의 후예를 자처하며 한실 부흥을 자신의 브랜드 가치로 삼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것이 바로 무예는 관우와 장비, 조자룡 등에 미치지 못했고, 지모 또한 제갈량과 방통을 따르지 못했으나 맨손에서 출발한 유비가 촉한의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다.


강한 인내심과 포용력이 큰 대기만성형 리더, 유비.. 그러나..

조조를 견제하며 야망을 숨기고 스스로 바보 행세를 했던 <도광양회>로 자신의 실리를 추구했고, 책사였던 공명에게 과감하게 힘을 실어준 2인 3각 공동 경영으로 촉한의 부흥을 일궈내고 한중왕에 오른 유비였지만, 전성기의 자만심과 관우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으로 정치적 균형감각을 잃고 이릉대전에서 젊은 육손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고 백제성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한 순간의 그릇된 판단이 자신과 촉한의 대 비극을 가져온 것이다. (51분)


3부 세상을 나눠 천하를 경영하다, 제갈량(諸葛亮)


<天下三分之計(천하삼분지계)를 실현하다>
정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인물!

황건기의 시절, 토벌이나 반동탁 동맹으로 뭉친 초기의 영웅들.. 조조, 유비, 관우, 장비가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나이를 먹어갈 때 등장한 27세의 풋내기 문인이 바로 제갈량. 누군가를 몰아내거나 거세한 뒤 등장하던 당시 상황에서 자신보다 20세나 더 많았던 유비의 ‘삼고초려’라는 품격 있는 데뷔전을 치르면서 구세주처럼 드라마틱하게 유비의 진영에 등장한다.
천하를 얻고자 하는 야심을 품지 않고 일관되게 자신이 ‘왕좌지재’ (王佐之才, 군주를 보좌하는 재능) 임을 유지한 재상 형 일급 정치가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선견지명과 지략을 타고 났으나 1인자의 자리에 욕심이 없었던 제갈량.. 삼고초려 후 제갈량은 유비의 지은에 보답하기 위해 유비가 죽은 후에도 충성을 다했고, 북벌에 나서기 직전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는 아직도 후대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50분)

4부 몸을 굽혀 뜻을 펴다. 손권(孫權)

<굴신인욕(屈身忍辱)> 몸을 낮추고 욕된 일을 잘 참음

수비수 손권을 둘러싼 시각들

손권은 부친 손견과 형 손책이 다져놓은 탄탄한 기반 위에서 출발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를 ‘수성에 능한 조연 배우’로 혹평한다. 실제로 그는 영지인 강동의 보전에 주력했고 천하통일의 의지를 한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야망이 없어서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당시 손권은 춘추전국시대 이래 호족세력이 극성했던 강동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때로 촉과 손을 잡고, 때론 위와 동맹을 맺는 등 오락가락한 행보를 보인 것도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 따른 임기응변이었던 것이다.

동맹과 타협의 귀재, 손권의 재발견

1) 자신의 몸을 낮추는 ‘하신(下身)’의 처세술
어린 나이에 권력을 승계한 손권은 원로들을 달래며 신하로 부리는 유연한 처세로 ‘하신(下身)’을 택했고, 이후 동맹에 있어서도 같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온유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손권의 외교 정책, 그 이면에는 유비를 견제하며 조조에 대항하는 냉정한 계산이 숨어있었다.

2) 시류에 따라 수시로 행보를 바꾸는 연횡술의 달인
주유의 활약이 뛰어났던 적벽대전의 승리는 손권의 정치적 기반을 크게 높였고, 뛰어난 전략가 여몽을 키워 기습 작전으로 형주를 탈환한 뒤, 유비의 복수전을 대비해서 수도를 이전, 조조에게 스스로 허리를 굽히며 신하이길 자처했으나 이릉대전에서 유비를 격퇴 후에는 추격을 자제하고, 다시 촉나라와 연대를 탐색했고, 신하를 자처했던 위나라를 뛰어난 용인술로 격퇴, 즉위 29년 만에 황제로 등극한다. 그러나, 황제가 된 후에 손권은 오만과 과욕으로 총명이 흐려져 신하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후계자 선정에도 혼선을 빚어 결국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져 망국을 초래하게 되었다.하지만, 부형으로부터 강동지역의 극히 일부를 물려받아 강동 전체로 늘리고 형주까지 차지했으니 천하통일의 주역이 되지는 못했으나 <굴신인욕(屈身忍辱)>을 통해 수성에는 성공한 리더였다고 볼 수 있다.(55분)